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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근성, 스노비즘(snobbism)을 알아보자

우주먼지의하루 2023. 8. 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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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비즘이란 ?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며 허세를 부리는 속물근성을 일컫는다. ‘Snob’에서 파생된 용어로 영국 작가 월리엄 새커리가 집필한 ‘The Book of Snobs’에서 희화한 이후 널리 사용되었다. ‘Snob’들은 지식 자체를 배우는 것보다 전문가처럼 보이는데 더 노력한다. 또한 앞에서는 고상한척 하지만 뒤에서는 금전이나 영예 등 눈앞의 이익에만 많은 관심을 가진다. 

스노비즘의 유래

알랭 드 보통의 같은 책에는 속물주의(Snobbery)의 영어 어원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1820년대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여러 대학에서 응시자 명단을 쓸 때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 즉 작위가 없다는 말을 줄여서 ‘s. nob’이라고 써놓던 관례가 있었는데 여기서 속물, 즉 snob이라는 말이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뜻이 바뀌어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일컫게 됐다.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할 때는 경멸의 의미가 들어 있다. 즉, 지위 등의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사회적, 문화적으로 한 가지의 가치 척도를 지나치게 떠받들어서 편견을 드러내는 것, 또는 그런 사람을 가치중립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하고자 할 때 속물주의, 또는 속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일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인정하려 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기준에 따라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에 따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스노비즘 예시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출신 학교를 보고 지원자의 잠재능력을 평가하는 행위"

 

소위 SKY 출신의 졸업자가 아니면 아예 뽑지 않거나 10대 대학의 서열을 매긴다거나 in-서울과 비-서울을 가르는 식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학생들 자신부터 대학, 기업까지 모두가 대학 서열 놀이에 빠져 있다. 어느 대학에 입학하는가가 평생을 두고 한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출신 대학이 어떤 범주로 묶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신분이 결정되다시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에서 사원들을 뽑아 일을 시키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일을 처리하는 능력과 기업 조직에의 적응능력이 출신 대학과 갖는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다면 그것마저 대개는 선후배 사이의 연대에 의해 밀어주고 끌어주는 것 때문이다. 끼리끼리 문화를 아예 없앨 수 있다면 출신 대학은 능력과 거의 상관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열이 더 높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당연히 더 능력이 뛰어난 인재일 것으로 생각하고 기업들은 더 많은 취업 기회를 부여한다. 기업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한번 사람들의 뇌리에 인식된 대학 서열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소질, 소망에 관계없이 서열이 높은 대학에 가기 위해 수험성적의 서열을 끌어올리는 것만을 과제로 생각하고 거기에 필요한 공부에만 열중한다. 비판적 사고와 꾸준한 인내심,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킹 능력 등 정작 기업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개발할 틈도 없고 아무도 그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기업은 자신들이 채용한 일류 대학의 졸업생들에게 실망하거나 학교 교육을 통해 이미 갖춰야 할 자질들을 교육하느라 많은 비용을 들이게 된다. 한 바퀴 고리처럼 되먹임이 돼 결국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들로부터 기대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출신 대학에 관계없이 채용한다면 이런 손해는 크게 줄일 수 있을뿐더러 사회 전체의 비효율을 줄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클래식 곡을 아는 것이 더 고상한 것일까?"

 

클래식 곡명을 모른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저질 음악이나 듣는다고 모욕하는 것. 물론, 교과서에 필수적으로 나오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대표곡을 모를 경우에는 정규 교육 여부를 의심받을 수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 채널에만 나오는 곡을 모른다는 이유로 저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클래식은 워낙 분야가 방대해서 음악 전공자나 클래식 애호가라도 모르는 곡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열성적인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곡만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몰랐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성 클래식 애호가와는 오히려 거리가 있다.

또한 평소 대중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클래식을 아예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곡 이름만 모를 뿐, 그 사람이 모르는 다른 클래식 곡명은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트락을 듣는 사람들은 해당 뮤지션에게 영향을 준 클래식 음악가는 알 수도 있다. 특히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아트락 마니아가 아닐지라도 왕년에 라디오 많이 들어 본 아재들은 알 가능성이 높다. 재즈 마니아의 경우도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1Q84>에 야나체크의 작품 <신포니에타>가 언급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곡은 국내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도 자주 안 나온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런 수법을 시전한다면 당신은 야나체크가 어떤 음악가인지 아냐?라고 반격하자.

 

스노비즘 원인

 

(1) 지식의 차이


개인이 보유한, 또는 접근 가능한 지식의 종류나 깊이 등에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특정 정보에 대한 번역/통역이 빈약할 때 스노비즘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외국어로 구성된 정보를 제대로 번역/통역하지 않으면 그 정보에 대해 접근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스노비즘은 이를 이용해 약간의 정보를 얻은 뒤 이를 부풀려서 자신이 해당 정보에 능통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매우 과격한 주장이지만, 번역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점을 악용해서 정식 학계에도 일부 학자들이 소수의 원서만 읽은 뒤 해당 학문의 능통한 전문가인양 행세한다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잡지 프리미어 98년 4월호에 한 영화 '스노브'가 이러한 현상을 언급하면서 얼떨결에 본인이 '스노브'라는 것을 인증해버린 내용이 담겨 있다. 한번 읽어보자. "이젠 영화에 있어서는 전문가나 매니아가 없어진 것 같지 않소? 왜, 예전에는 누가 영화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는가에 따라 그런 층이 존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보 공유 시대가 되었잖우. 인터넷에 들어가면 지금 촬영중인 세계 영화가 한눈에 쫙 들어오지, 게다가 이리저리 얽어서 부대정보까지 주지--이젠 누구나 영화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소 그려, 특히나 매니아라고 자처하던 층에서는 이런 현상에 당혹감마저 느끼는 것 같소, 참."

결국 개나 소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되는 바람에 내가 잘난 척을 못한다고 투정부리는 뭐 그런 내용이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이 자기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고, 스노브에게 자기 일거리를 빼앗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일반인들이 스노브와 전문가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학문 분야일수록 전문가들은 지식을 널리 공유하며 스노브든 일반인이든 뭐든 간에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다는 태도를 보인다. 해당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판이 커지고, 판이 커져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노브가 전문가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도 하는 특정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은 특정 인물 이야기만 나오면 지식 소매상이니 장사꾼이니 하고 욕을 한다. 개나 소나 학문을 팔아먹어 장사를 하는 말세라면서 짜증을 낸다.


(2) 정신승리


자의식과잉적 심리를 가진 경우가 많으나, 종종 자아존중감이 상당히 바닥을 치기에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남들을 깔아보는 경우도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지속되는 경제 불황에서 고개를 드는 넷 우익 사이에서 발견되는 스노비즘을 예로 들 수 있다. 넷 우익의 구성원을 보면 2ch에 거의 하루 대부분을 투자하는 인터넷 중독자, 프리터, 백수 등 일반적인 사람들이 '실패자'로 생각할 사람들이 제법 많은 수를 차지하는데,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 염증과 환멸을 느끼고 재일을 일본의 부정부패, 당면한 사회문제의 흑막이라 주장하며 이에 동조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다수를 '너희는 재일의 음모도 모르는 멍청이들' 식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니들이 제 3제국이냐 사실 일본 2ch 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디씨의 역갤러들이 딱 전형적인, 자존감은 시궁창 바닥이고 사회에 억하심정은 많은데 실제 현실에선 분풀이 할 대상이 없으니 국까적인 방향으로 지엽적인 정보만 일반인들 보기엔 기분나쁜 아스퍼거 처럼 파대서 인터넷에 싸질러놓고 자신들끼리 '깨어 있는 사람'이라 자위질하는 적절한 해당 사례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련의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내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재일을 공격해야지!'하며 인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보적 약자 항목 참조. 자신의 현실은 백안시하고 교묘하게 '애국'으로 포장한다. 한국으로 치면, 종북세력이 대한민국에 몇만 이상씩 주요 기관에 침투해서 북한을 이롭게하는 행동을 하고(하려고하고)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모 집단 이라거나 이런 주장을 함으로써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자신들이 재일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깨어있고 영향력있는 시민으로 자신의 인식 속에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승리라 할 수 있겠다.

(3)그 밖의 원인

 


스노비즘에 빠진 사람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학문에 정진하는 것보다 전문가처럼 보이게 노력하는데 드는 수고와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고, 잘 통하기 때문이며,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는 어떤 분야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야 하거나, 최소한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를 찾아 보거나 신문, 잡지 등을 일일히 뒤적이는 수고를 해가며 겨우 얻어내야 했던 지식들이, 이제는 클릭 한번, 검색 한번이면 쉽게 알수 있게된 측면도 있다. 따라서 지식에 접근하는 비용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즉 해당 분야가 대중화될수록) 스노비즘은 사라져간다. 일례로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의 한국은 스노비즘 천국이었다. 그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스노비즘도 있었다.

스노비즘은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상에서 누군가는 '깊은 지식은 미덕이지만 얕은 지식은 생존전략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주로 자서전, 자기계발서 같은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 팔거나 강연에 나서거나 해서 금전적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문외한의 눈에도 확 차이나는 특정 학문분야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문외한의 눈에 별 차이나지 않는 어느 학문분야의 경우 자기계발서 작가가 학문의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니고 대학 교수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출처 

https://dbr.donga.com/article/view/1303/article_no/4905/ac/magazine

https://m.cafe.daum.net/readandchange/a5bb/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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